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단지 정치적 갈등이나 목회자 윤리의 문제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병리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는 신앙, 삶의 현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단절된 신앙에서 비롯된다. 주일에는 뜨겁게 찬양하고 아멘으로 화답하지만, 월요일의 삶은 복음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 이것이 한국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든 가장 깊은 골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선언했던 역사적 의미는 단순한 신학적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앙의 주체성 회복을 향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성직자 중심의 신앙 구조가 아니라, 성도 스스로가 일상의 자리에서 복음의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개혁의 목소리였다. 기독교 역사는 바로 이 평신도 각성의 흐름 속에서 생명력을 회복해 왔다.

“예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오히려 진짜 예배가 시작된다. 주일의 감격이 월요일의 직장, 화요일의 가정, 수요일의 시장과 공공영역으로 흘러가야 한다. 하나님께 드린 예배가 실제 삶 속에서 ‘흘러가는 은혜’가 될 때 비로소 예배는 완성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행사’로, 봉사를 ‘의무’로, 헌신을 ‘조건’으로 소비한다. 은혜는 일시적 감정으로 남고, 말씀은 삶의 현장에서 사라진다. 사도 바울이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권면한 이유는 분명하다. 예배는 삶의 방식, 태도, 선택에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진리를 몸으로 살았다.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경제적·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함으로 저들의 신앙을 증명한다”는 세상의 고백을 이끌어냈다. 그들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삶 전체가 예배였다.

“성도의 행동이 곧 복음의 설교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이 표현은 도덕적 표어가 아니라, 존재의 책임 선언이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며, 교회 안에서의 거룩보다 세상 한복판에서의 정직·사랑·정의가 더 강력한 복음의 설교가 된다.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보게 하려면, 우리 손과 발과 눈이 그분의 것이 되어야 한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정치의 중심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46년을 싸우며 “신앙이 행동으로 흐르지 않으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깊은 영성은 언제나 실천으로 흘러간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세상 속에서 힘을 잃은 이유는, 복음을 말하지만 복음을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 밖에서의 한 성도의 정직함, 한 그리스도인의 사랑, 한 평신도의 양심적 선택이야말로 복음의 설교보다 더 강력한 설교다.

“평신도의 각성이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목회자의 개혁이 교회의 구조를 바꾼다면, 성도의 개혁은 교회의 영혼을 바꾼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도를 ‘청중’으로만 길러왔다. 소비자 신앙, 감성 중심 신앙, 아웃소싱된 신앙생활은 교회를 병들게 했다. 평신도는 교회를 운영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복음을 확장하는 ‘사명자’다.

윌리엄 캐리처럼 평범한 구두수선공이 지구 반대편 인도로 건너가 선교의 역사를 뒤집었고, 함석헌 선생처럼 평신도 사상가가 한국사회에 기독교적 양심과 정의의 길을 열었다. 한국교회 역사 역시 장기려 박사와 같은 평신도의 헌신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얻어 왔다.

성도의 일터, 가정, 학교, 사업장은 모두 선교지다. 성도의 삶이 예배이고, 선택이 사역이며, 가치관이 복음이 되어야 한다.

“미래는 준비하는 교회에 주어진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비판이나 감정적 탄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단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성도의 개혁 로드맵이다. 신앙이 예배당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삶 전체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성도 스스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는 주일예배 중심에 머무는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배의 감동이 월요일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 직장인들이 실제 업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신앙윤리 지침서나 가정예배와 자녀 영성 훈련을 위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일터선교 소그룹이나 ‘월–토 신앙챌린지’와 같은 생활형 실천운동을 통해 예배가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습관이 되게 해야 한다. 예배는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주일예배는 삶으로 이어지는 영적 시작이어야 한다.

성도의 개혁은 결국 ‘삶의 복음화’로 귀결된다. 한국교회가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성도 개개인의 생활 규범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부정·편법·탈세·허위광고·직장 내 부조리와의 단호한 결별을 요구하는 정직의 삶, 분노 대신 경청하고 비난 대신 이해하며 고립된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공감의 태도, 가정과 일터·지역사회에서 맡은 책임에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책임의 실천이 성도의 일상을 구성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윤리는 설교보다 강력한 복음의 언어다.

또한 한국교회는 평신도를 ‘교회 운영의 조력자’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전문성을 갖춘 평신도 리더십을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윤리·정의·환경·복지와 같은 사회적 영역에서 기독 지성을 길러내고, 일터선교 전문가와 차세대 교육 사역자, 디지털 콘텐츠 사역자 등 시대적 요구에 맞는 평신도 지도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평신도가 사회문화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리더로 서는 순간, 교회는 비로소 외부로부터 설득력을 얻게 된다.

성도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은 약자를 향한 책임이다. 독거노인·청년·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의 취약한 이웃을 위한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교회의 체질이 되어야 한다. ‘한 성도, 한 이웃’ 결연 제도와 같은 개인 맞춤형 돌봄 구조를 마련하고,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와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을 확장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 건물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예수님이 걸으셨던 목회의 방향을 성도의 일상 속에서 재현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성도는 온라인 공간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AI와 빅데이터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온라인 제자훈련, 비대면 상담·멘토링, 청년을 위한 디지털 영성 플랫폼, 성경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등 신앙 교육 방식은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디지털은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선교지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성도를 ‘예배의 청중’이 아닌 ‘세상 속 사명자’로 재정의해야 한다. “나는 주일 소비자가 아니라 세상 속 사명자”라는 신앙정체성이 회복될 때 교회는 비로소 사회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교회는 성도를 통해 세상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도 스스로가 인식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결국 한국교회 회복의 문은 성도의 일상에서 열린다. 한 사람의 삶이 복음의 설교가 되고, 정직·사랑·책임이 일상에서 구현될 때 한국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종교개혁이 그러했듯 오늘의 개혁 역시 성도의 각성에서 출발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성도의 변화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신앙은 주일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예배당에서의 “아멘”이 세상에서의 “정직·사랑·정의”로 이어질 때, 교회는 다시 신뢰를 얻는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단지 제도 개선이나 목회자 윤리 강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은 삶으로 드러날 때 가장 강력하다. 성도 한 사람의 각성이 교회의 미래를 살린다.

[제4회 예고: 예배의 개혁 - '형식에서 본질로, 관습에서 영성으로'] -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 그것이 교회 회복의 시작이다"

노곤채 목사/ 풀가스펠뉴스 대표, 한국기독언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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